세모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세모입니다.
가야 엄마, 하늘 아빠의 4남 1녀중 둘째 아들입니다. 제 생일은 12월
29일 입니다. 제가 태어난 지 한 달 반 정도 되었을 때, 엄마와
형제들과 헤어져 지금 사는 이 집에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온 첫날 밤에 얼마나 무섭고, 엄마가 보고 싶던지 밤새
울었습니다. 수많은 낯선 냄새들과, 나 혼자 있는 펜스 안이 너무
싫어서 울고 짖고 떼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사람 엄마가 펜스 밖에
앉아 애처롭게 절 쳐다보았습니다. 바라보다가... 안아주었다가 다시 바라 보다가.... 결국 펜스를 사이에
두고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또 다른 엄마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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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지 한 달...

요즘 엄마는 제가 쉬만 하려고 하면 옆에서 자꾸 이상한 주문을 외웁니다. 신경 쓰여 죽겠습니다. 처음에 뭐라는지 몰랐는데 듣다 보니 '빨리빨리~ 빨리빨리' 입니다. 엄마가 설겆이 하는 틈에 쉬싸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번개처럼 나타나 또 빨리빨리~ 합니다. 나올 것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사온지 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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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그렇게 주문을 외워대던 엄마 때문인지... 이젠 안마렵던 쉬도 빨리빨리~하면
나옵니다. 신기합니다. 요즘 저는 이가 자꾸 간질간질 해서... 뭐든 입에만 닿으면
질겅질겅 씹고 싶습니다.엄마 손도 물고 싶고, 쇼파 다리, 신발, 양말, 가방, 핸드폰
충전기. 사방에 물고 싶은 것들 뿐입니다. 엄마의 '안돼' 소리에도 슬금슬금 간을 보며 형, 누나 손 발을 물어보기도 하고, 엄마
샤워하는 틈을 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꼬리꼬리 한 형 신발을 몰래 집에 물고와
걸레조각으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전에 어디선가 맡아본 익숙하고 좋은 냄새를 풍기며 손님 한 분이
집에 왔습니다.어찌나 반갑던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두 발로 서서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이 사람 포스가 장난 아닙니다. 눈빛 한 번, 말 한마디가 엄마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자꾸 엎드리라고 하길래 배째라며 드러누워 손가락 물고 간보기 하다가 바로 주둥이
잡히고 발가락 꼬집혔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길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말
잘 듣고 사료 얻어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느덧 여름

요즘 들어 엄마는 시간 날 때마다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합니다. 처음엔 털갈이를 하네 어쩌고 저쩌고 하시더니... 한 달이 넘게 계속 빠지는 털을 보며 이제 거의 포기하신 듯 합니다. 과일 먹다 과자 먹다 마루에 떨어뜨리면 얼른 주워서 한 번 쓱~ 보고 털 몇 개 털어 내고 다시 홀랑 먹습니다. 행여 제가 주워 먹을까 그러는 건지 정말 빨리도 입 속으로 들어갑니다. 빠진 털도 밥에 얹어 먹는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중략)
이사 온지 여섯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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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랑은 어딜 가든 항상 같이 다닙니다. 길에 다니면 절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백화점도 가고, 형 학교에도 가고, 누나 학원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갑니다. 처음엔
무섭다며 도망가던 사람들도 이제는 '세모 왔구나'하며 반겨줍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백화점에 출근을 합니다. 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층부터 육층까지
계속 에스컬레이터만 타면서 밥을 한 알씩 줍니다. 움직이는 계단이 무서워 몇 번
타기 싫다고 버텼더니 아주 여기서 밥을 먹일 기세입니다. 아직도 올라가는 계단은
무서워서 내릴 때 뛰어내리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식당에 갔는데 식당입구에서부터 들어가지 못하고
소란스러웠습니다.
엄마 아빠 목소리는 커지고, 식당 주인도 뛰어나왔습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식당에 못 들어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제 마법 조끼가 통하지 않는
곳이 있나 봐요.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엄마랑 아빠는 시청, 구청에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 때문에 우리 가족이 외식 한 번 맘 편히 못하는 것 같아
속이상합니다.

이사 온지 여덟달...

매일 아침 형과 누나가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랑 산책을 갑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여러 동물 친구들을 많이 만납니다. 강아지, 고양이, 비둘기, 까치, 토끼... 어릴 땐 개만 보면 달려든다고 엄마가 자꾸 엉덩이를 눌러 앉히고 밥을 막 주곤 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아무 것도 안주고 지나가 버려서 산책하는 맛이 안납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나갈 생각은 안하고 침대에만 누워있습니다. 은근슬쩍 안방에 들어가 얼굴에 코도 비벼보고 침을 척척 발라봐도 꿈쩍도 안합니다. 에구에구~ 하는걸 보면 엄마가 아픈가 봅니다.. 내가 아플 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같이 옆에 누워 자고..또 잤습니다.
벌써 가을인가 봅니다…
세모 이미지
엄마가 청소한다고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점 같은 사람들과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엄마도 제 옆에 앉아있습니다. 요즘 들어 우리 가족들은 자꾸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앞이빨이 쏙 빠지도록
뽀뽀를 해주며 '우리 세모 학교에 들어가면 많이 보고 싶을꺼야~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가 학교에 입학할 날이 다가오나 봅니다. 저는 예비 안내견입니다.
헤어질 날을 기약하고 우리 가족을 만났고, 이제 그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안내견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저도 잘 모릅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우리 가족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워낙 성격이 좋아 모든 사람들을 다 좋아하다 보니... 우리 가족들 제가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않을께요~라는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들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넣어 놓을께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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