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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는 예지와 창조 이야기입니다.

지난 2월 25일 숙명여대 졸업식장, 시각장애를 딛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김예지(24세)씨를 인터뷰하려는 국내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졸업식 날 하루종일 인터뷰에 응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김예지씨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친구가 있다. 바로 안내견 '창조'다.
졸업식 다음날에는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로 뽑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의 오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도 그의 곁에 창조가 있었다. 그와 창조의 운명적인 만남은 지난 2000년 8월로 거슬러올라간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분양을 한다기에 신청을 했는데 그와 여러 가지 조건이 일치하는 창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유난히 활발하고 애교 많은 창조덕분에 그의 성격도 몰라보게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바뀌어 갔다. 대학시절 내내 창조와 함께 수업을 듣고,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숙명여대를 다니는 학생 중에 창조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창조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편하고 안전하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두살 때 문지방에서 떨어져 망막이 찢기는 중상을 입고 망막색소변성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기 시작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 완전 실명을 한 후 세상을 귀로 듣고 바라보게 된 그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예뻐서 피아노 연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라 결코 평탄치 만은 않은 길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점자악보를 구할 수 없어 일본에서 어렵게 악보를 구해 밤새 악보와 건반을 만져 가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특혜가 주어지는 장애인 특별전형에 응시하지 않고 일반전형으로 당당히 대학에 합격하였다.

대학생활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녹음해 집에서 수십 차례 반복해 듣고 정리하는 등 남보다 몇 배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이었기에 마냥 즐거웠다고. 그런 노력으로 4.5만점에 3.88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연주실력이 빼어나 각종 콩쿠르에 나가 수상을 거머쥐었다.
얼마 전에는 트리오를 결성, 피아니스트로서 올 7월과 11월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고, 독주회와 협연 스케줄도 잡혀 있다. 올 3월에는 음악교육전공으로 숙대 대학원에 진학도 하였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특수학교 음악교사가 되어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장애인 후배들을 가르치는 게 희망사항이다.

그에게 가족사항을 물어 보니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창조, 그리고 본인까지 다섯이란다. 다른 가족들도 창조가 한 가족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조와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음식점 등을 이용할 때 창조와 함께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창조를 막고 선다. 실제로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급한 장애인 보조견 표지를 부착한 안내견과 안내견 강아지는 모든 공공시설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사회의 반응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여러 매체를 통한 인터뷰에 기꺼이 응하는 것도 안내견에 대한 홍보이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비장애인들이 안내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해 자신의 입을 통해서라도 안내견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그는 창조에게도 바라는 게 있다. 항상 지금처럼 늠름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자는 거다. 창조와 나서는 세상나들이에 그의 콧노래소리가 좀더 울려 퍼지길 바란다.

두번째 이야기는 보리이야기입니다.

오늘 형섭이는 첫 수업이 8시 30분이었기 때문에 7시 30분에 시장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보리를 아는 꼬마 아이는 보리에게 아침 인사를 했고, 마을버스가 도착하고 형섭이와 보리가 탈 때까지 동네 아저씨는 문을 잡아주셨다.
마을버스에서 보리와 형섭이는 맨 앞자리가 지정석이다. 형섭이는 보리에게 자리를 잡아주고, 발에 밟히지 않도록 꼬리를 보리의 발 아래로 모아주는 것도 잊지 않고 챙겼다.
잠시 후 병원 앞에서 버스를 내려 학교까지 걸어갔다. 보리와 형섭이는 훤히 보이는 길을 달리듯이 씩씩하게 걸어간다. 학교 앞 큰 길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교통경찰 아저씨가 신기했는지 보리를 만지려 한다. 하지만 보리는 눈길도 안주고 신호가 바뀌자 늠름하게 앞으로 걸어간다. 그 경찰 아저씨는 안내견이 일할 때는 어떻게 예뻐해 주어야 하는지 아직 모르셨나 보다.

오늘 수업은 문학관 2층이다. 형섭이는 시간표 짜기의 귀재가 됐다. 월요일은 수업도 없는 ‘주4파’에다가 공강은 거의 없으며 강의실도 문학관에서 모두 해결된다. 심지어 오늘 수업은 모두 같은 강의실이다. 지난 학기엔 강의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많이 힘들었단다. 형섭이의 자리는 늘 강의실 맨 앞자리이고, 당연히 보리의 자리는 늘 그 옆이다.
형섭이는 보리를 위해 따뜻한 깔개를 깔아 주었다. 형섭이의 큰 가방 속에는 보리 깔개, 보리 껌, 보리의 D.T(Dog Toilet, 배변용 봉투), 보리 털(흐흐)…, 모두 보리를 위한 것밖에 없다.

오늘 수업은 실용영어강독과 실용영어회화. 형섭이는 수업 내용을 Braille Note(점자 입력기)로 입력하고, 교수님의 강의는 녹음기에 녹음했다가 집에 가서 정리한다. 교재도 유인물도 모두 스캐닝 한 후 음성으로 변환하여 공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보다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 특히 첫 수업은 긴 글들을 많이 읽게 되는 강독 수업이라 미리 내용을 점자로 변환해 오지 않으면 수업을 듣기가 힘들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한 주 미리 자료를 보내 주기로 하셔서 부지런한 형섭이가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긴 시간 이어지는 수업에도 보리는 얌전히 엎드려있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형아가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형섭이는 쉬는 시간에도 보리의 D.T를 잊지 않고 챙겼다.
이른 아침부터 연이은 영어 수업으로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팠고, 학교 앞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안내견과 같이 가기에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가 식당이라고 했다. 주로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간 곳은 아주머니가 보리의 이름까지 기억하시고 잘 챙겨주셔서 형섭이는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후후~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중고등학교 하교 시간인데다가 형섭이가 사는 동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조그마한 마을버스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다행히 형섭이가 타고 내리는 곳이 거의 종점이라 늘 형섭이와 보리의 자리는 지킬 수 있었고, 그 복잡한 상황에서도 보리는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형섭이네 동네는 하늘이 참 가까워 보인다. 형섭이네 집엔 보리가 놀 수 있는 옥상이 있어서 온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다만 2층 할머니가 계단에서 키우는 성깔 있는 강아지가 보리의 출퇴근길을 방해하지만, 형섭이는 보리를 잘 보호해 주었고 보리도 잘 참아 주고 있다.
형섭이는 부모님이 지방에 계신 터라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지내고 있다. 때문에 보리는 형섭이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다. 아직까지도 부모님의 보호와 온갖 지원 아래서 생활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어린 형섭이는 혼자 모든 일을 꿋꿋이 해내며 지내고 있었다.

하루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집에 와서 하네스와 자켓을 벗은 보리는 그간 참았던 애교와 장난기를 맘껏 보여주었고, 실컷 놀고 나서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들었다. 형섭이는 하루 종일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에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오히려 내가 형섭이에게 너무 고맙기만 한데, 뭐가 서로 그리 고맙다는 건지…. 뭐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오늘 형섭이와 보리와의 하루는 우연히 얻어진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하루가 되었다. 처음 형섭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후로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았다. 이런 얘기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런 건 모르겠지…,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지만 형섭이와 보낸 하루 동안 ‘형섭이는 다르니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공부하는 대학생이었고 전혀 다른 것이 없는데,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것에서 서로 오해하고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안내견과 생활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자원봉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견에 대한 일도 좋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과 사용자의 생활에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쉬운 점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도우미가 있으면 훨씬 편할 테고, 특히 혼자 생활하고 있는 사용자들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인연이 필요하지 않을까.

삼성안내견학교에 계시는 분이 형섭이를 챙기고 도와주시는 모습은 거의 가족과 같았고,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잠깐 달아올랐다 식어버리는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은근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연과 관심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부족하기에 망설여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친한 동생 형섭이와 그의 동거견 보리로…. 이렇듯 나에게 소중한 하루를 선물한 형섭이와 보리에게 가장 큰 감사를 보내며, 늘 사랑으로 안내견과 사용자와 함께 하시는 삼성안내견학교 직원들께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글쓴이: 최선경 (안내견학교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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